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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보헤미안 '모딜리아니' No.2
글 : 최선호
2019.09.04

모딜리아니는 1884년 이탈리아 항구도시 리보르노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다. 
모딜리아니는 어려서 몸이 약했다. 11살 때는 늑막염을 앓았고, 
14살에는 장티푸스로 고생했으며, 16살 때에는 결핵에 걸렸다. 
이 때 걸린 결핵은 결국 그를 젊은 나이에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었다. 
어려서 어머니와 함께 나폴리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등을 여행하면서 
르네상스미술의 감수성을 키웠다.
1906년에 모딜리아니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심지

파리로 갔다.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사는 몽마르트에 정착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그의 품행과 평판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모딜리아니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몽마르트가 과거의 인습과 퇴폐, 타락으로 물들어 있는데 반해 몽파르나스는

예술과 문학이 빛을 발하는, 어느 곳 보다도 화려한 색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림 : 누워있는 나부

 

그는 몽파르나스로 거처를 옮겼다.
몽파르나스 아틀리에는 누추했고 점차 보헤미안 예술가의 외모로 변해 갔다. 
이러한 변화는 아마도 결핵이라는 불치병에 걸렸을 때부터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요절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지식인과 예술가들 사이에서 결핵에 대한 전형적인 반응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 즐기는 것,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쾌락에 빠지는 것이었다. 
모딜리아니는 이러한 보헤미안적 환경 속에서 여자들과 잦은 애정 행각을 벌였고 
독한 압생트와 헤시시 같은 마약에 중독되었다. 술에 취했을 때, 그는 점점
반 고흐처럼 비극적인 작가의 전형이 되어 갔다. 
그런 와중에서도 초기 파리 시절, 모딜리아니는 엄청난 속도로 데생과 그림 작업을 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처음에는 툴루즈 로트렉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1907년경에는 폴 세잔의 영향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부랑쿠시를 만나 조각을 배운 다음 부터 어떤 양식의 카테고리에도 포함되지

않는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켰다.

 

 

 

  글 : 최선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