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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살다간 파리의 보헤미안 '잔 에뷰테른'
글 : 최선호
2019.09.11

 

 

1919년 늦은 가을, 여기 한 여인이 만삭의 몸으로 힘들게 
화가의 모델로 앉아있다. 갸름한 얼굴에 긴 목,
눈에는 표정이 없다. 
눈은 파란색으로 옅게 칠해 놓고 눈동자 없이 윤곽선만 그렸다. 
좁은 어깨, 긴 코와 다문 작은 입술, 팔을 소파에 걸치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기대어 밀어내듯 기운 포즈는 곧 다가올 불길한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걸까. 초상화의 주인공은 영원한 몽마르트의 보헤미안이자 
이탈리아 화가인 모딜리아니의 부인 잔이다. 
1917년 4월, 모딜리아니는 일본인 화가 후지타 츠구하루(藤田嗣治 1886-1968)

의 모델이었던 19살의 잔을 만난다. 
모딜리아니와 후지타는 같은 건물에 아틀리에를 두고 있었다. 
모딜리아니는 잔을 보자 한눈에 반하였다. 
수려한 용모에 빛나는 눈빛과 청순한 자태는 모델이라기보다 이성으로서의 
사랑이었다. 잔은 화가 지망생이었다. 
보수적인 부르주아적 배경을 가진 잔의 가족은 모딜리아니를 가난한 
유대인 화가라는 점에 반감을 갖고 둘의 만남을 극력 반대하였다. 
결국 불같은 사랑은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랑드 쇼미에르가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당시 모딜리아니는 서른셋, 잔은 열아홉이었다. 
그런 잔이 이제 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곧 새로운 아기의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잔은 모딜리아니가 폐결핵으로 1920년 1월 24일 
파리 자선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자 다음날 9개월 된 뱃속의 아이와 함께, 
어린 딸을 세상에 홀로 남겨두고 자신의 집 6층 창문에서 몸을 던진다. 
그녀에게 모딜리아니는 세상의 전부였다. 
열아홉 살 꽃다운 나이에 처음 모딜리아니를 보았을 때 파도의 격랑보다 더

심하게 뛰었던 잔의 심장이 3년이란 짧은 시간의 격정 속에 서로의 찬 가슴을 
보듬고 어루만지며 모딜리아니를 사랑했다. 
하지만 더 이상 모딜리아니를 볼 수 없자 자신도 짧고 모진 생을 마감하였다.
모딜리아니의 방황하는 이탈리아인보다 더 비극적인, 그러나 생의 절정에서 
사라진 그녀의 삶은 모딜리아니 그림보다 더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파리 페르라세즈 공동묘지 모딜리아니의 묘비에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884년 7월 12일 리보르노생.
1920년 1월 24일 파리에서 죽다. 
이제 바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라고 새겨져있고, 
그 아래 “잔 에뷔테른. 1898년 4월 6일생. 1920년 1월 25일 파리에서 죽다. 
모든 것을 모딜리아니에게 바친 헌신적인 반려.” 라고 간단하게 적혀있다. 
비명는 간단하지만 모딜리아니와 잔 그 둘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말과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인생은 그 누구를 돌아보아도 간단하지

않지만, 예술가의 삶과 죽음에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비애가 있다. 비가 내린다.

 

 

  글 : 최선호

  - 화가